노리치 (Norwich)
이전에는 이 지역을 노르비크(Norvic)이라고 불렀다. 8세기 무렵의 머시아 동전과 라인란트의 도자기 파편이 발견된 것으로 볼 때, 이미 그 무렵에는 다른 지역과의 교역이 이루어진 것으로 추측된다. 10세기 전반에는 화폐 주조도 이루어지고 있었는데, 에덜스탄(Athelstan)의 통치기간인 924년부터 939년에 주조된 동전에 ‘Norvic’이라는 문자가 새겨져 있다.
그 이후에도 웬섬 강(River Wensum)의 수운을 이용하여 교역이 이루어졌는데, 이 지역은 상업의 중심지로 번영하였다. 노르만 정복 무렵에는 영국에서 손꼽을 만한 도시가 되었는데, 둠스데이 북에 따르면 약 25개의 교회가 있었고 오천 명에서 만 명 정도의 인구가 거주했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중세시대에는 양모 무역을 통해 얻은 이득을 통해 많은 교회가 건설되었는데, 현대의 노리치에도 많은 중세시대 교회가 남아 있다. 당시 무역지는 스칸디나비아에서 스페인에 걸친 광범위한 지역을 대상으로 하였다.
16세기 및 17세기에는 프랑스의 위그노와 벨기에의 왈론인 등 다양한 소수민족들이 노리치로 이주해 왔다. 이들은 노리치 사람들에게 새롭고 이익이 되는 기술을 가져왔기에 큰 저항이 없이 지역 공동체에 흡수되었다. 이런 사람들이 온 것을 시작으로, 유럽 본토와의 거래가 강화되기 시작했다. 노리치는 16세기 영국에서 런던에 이은 두 번째로 큰 도시였으며, 산업혁명 시절까지 제2도시의 자리를 두고 브리스틀과 경쟁하였다.
노리치는 지리적으로 고립된 곳에 위치해 있었으므로 런던에 가는 것보다 수운을 통해 암스테르담으로 가는 것이 빨랐다. 그러나 1845년에 철도가 설치되면서, 지리적 고립이 해소되었다. 20세기 초에는 다양한 종류의 제조업이 노리치 경제를 지탱하였다. 신발, 옷, 공구 외에도 항공기 산업이 중요한 산업으로 자리하였다. 또한, 초콜릿 제조업도 이루어졌다.
지도 - 노리치 (Norwich)
지도
나라 - 영국
영국의 국기 |
아일랜드섬의 영국령인 북아일랜드는 아일랜드 공화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으며 해외 영토까지 포함 시 스페인(영국령 지브롤터), 키프로스(아크로티리 데켈리아)와 국경을 공유하고 있다. 케이맨 제도, 버뮤다와 같이 해외 본토의 일부는 아니나 영국의 군주의 지배 하에 있는 영토들도 있다. 해외 영토 거주민들과 영국 본토의 국민들은 서로의 지역에 거주할 권리가 없으며 상호간의 이민도 자유롭지 않다.
통화 / 언어
ISO | 통화 | 상징 | 유효숫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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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BP | 파운드 스털링 (Pound sterling) | £ | 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