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롱성 (Tỉnh Vĩnh Long)
오늘날의 빈롱성은 1732년 응우옌 왕조가 세운 롱호딘(營)의 일부로서, 벤째성, 짜빈성, 껀터의 일부 지역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지역은 18세기 후반에 떠이선 왕조의 형제들과 응우옌 왕조 사이에 가장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다. 1784년 응우옌후에는 망팃강에서 응우옌아인을 돕는 시암군을 격파했다.
1951년 베트남 민주공화국의 남부 저항 행정 위원회는 빈롱성과 짜빈성을 통합하여 빈짜성으로 합병하였다. 빈짜성은 1954년까지 존재했다. (그러나, 북베트남은 이 지역을 상당 기간 관리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 협정은 시행되지 않았다.) 1957년에 남베트남은 빈롱성을 형성했는데, 다음과 같은 쩌우타인현, 쯔락현(현재의 벤째성 일부), 땀빈현, 빈민현, 사덱현, 럽보현 6개 현으로 구성되어 있다. 1961년 까이늄현이 쯔락현에서 분리되었다.
득똔현과 득타인현이 1962년에 추가되었지만, 1966년에 새로 형성된 사덱성에 합류했다. 1975년을 기준으로 그 지방에는 일곱 개의 현이 있었다. (쩌우타인현, 쯔락현, 땀빈현, 빈민현, 민득현, 짜온현, 붕리엠현)
남베트남이 함락된 후 베트남 사회주의 공화국은 비롱성을 짜빈성과 합병하여 1976년 끄우롱성을 형성하였다. 1991년 끄우롱성은 다시 빈롱성과 짜빈성으로 갈라졌다. 분단 당시 빈롱성은 1개 시(빈롱시)와 5개의 현(롱호, 붕리엠, 빈민, 땀빈, 짜온)으로 구성되었다.
1992년, 망팃현은 롱호현에서 다시 분할되었다. 2007년에는 빈떤현이 새로 만들어졌다.
지도 - 빈롱성 (Tỉnh Vĩnh Long)
지도
나라 - 베트남
베트남의 국기 |
프랑스의 식민 지배를 받는 동안 베트남은 프랑스령 인도차이나의 일부로 편입되었다. 베트남은 프랑스 식민 지배 기간 동안 계속하여 독립 운동을 벌였고, 제2차 세계대전 기간에는 일본의 지배를 받기도 하였다. 전쟁이 끝난 후, 1945년 9월 2일 호치민은 하노이의 바딘 광장에서 베트남의 독립을 선언하고 베트남 민주 공화국의 수립을 선언하였다. 그러나, 프랑스는 베트남의 독립을 인정하지 않았고, 프랑스와 베트남은 제1차 인도차이나 전쟁을 벌이게 되었다. 1954년 3월 13일 디엔비엔푸 전투에서 베트남군이 대승을 거두고 프랑스군이 철수를 하면서 베트남은 독립을 맞게 되었다. 그러나 서구 열강은 제네바 협정을 통해 베트남을 다시 북위 17도를 기준으로 남북으로 분단시켰고, 약속하였던 전국 선거를 거부한 채 응우옌 왕조의 마지막 황제 바오 다이를 왕으로 내세워 베트남국을 수립하였다. 베트남은 얼마 지나지 않아 응오딘지엠의 쿠데타로 붕괴하고 베트남 공화국이 세워져 남북의 대결이 시작되었다. 미국은 도미노 이론을 내세워 베트남에 개입하였으며 통킹만 사건을 빌미로 베트남 전쟁이 벌어지게 되었다. 베트남 전쟁 기간 동안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에서 사용한 것보다 훨씬 많은 폭탄을 북베트남 지역에 투하하였고 막강한 화력과 인력을 동원하였으나, 베트남의 끈질긴 저항과 전쟁을 계속하는 동안 일어난 전 세계와 미국 내의 반전 여론에 밀려 결국 1973년 파리 협정을 맺고 철군하였다. 1975년 북베트남은 사이공을 점령하였고, 1976년 7월 2일 베트남 사회주의 공화국을 수립하였다. 전쟁 후 베트남은 전후 복구와 공산주의 경제체제를 통한 발전을 도모하였으나, 1979년 크메르 루주와 전쟁을 치렀고, 중화인민공화국과도 국경분쟁으로 중국-베트남 전쟁을 치르는 등 순탄하지 않았다. 1992년 베트남 공산당은 도이 머이를 시작하여 혼합 경제를 도입하였고, 2000년에는 거의 대부분의 국가와 수교를 맺었다.
통화 / 언어
ISO | 통화 | 상징 | 유효숫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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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ND | 베트남 동 (Vietnamese đồng) | â‚« | 0 |